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14:1

언약과 성소

제목언약과성소 003 언약 032023-05-1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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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언약3

 

오늘은 언약 세 번째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언약을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약을 먼저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성소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성소 제도와 성소봉사를 주시는 목적은 언약을 이루도록 하기 위하여 성소를 주신 것이에요. 왜냐하면 이 언약의 중심이 하나님의 계명이고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육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였고 하늘의 말씀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에요. 정신이 정반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이 죄예요. 우리 자체가 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죄가 지배하는 그런 죄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는 선한 것이 전혀 없어요. 그런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 안에 들어가서 그 언약을 이루려고 하면 우리 자신이 바꿔줘야 되요. 육으로는 하나님과 언약을 절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항상 하나님을 떠나서 곁길로 가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거듭남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에요. 6천 년 역사가 항상 그런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복음의 역사 성소봉사를 받아서 그 마음에 확실하게 육이 영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는 거예요. 비록 소수지만 항상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그 사람들을 우리에게 증인으로 주고 계십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세우셨으니 지금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세워주실 것이다. 바로 그러한 증인이란 말이죠.

그래서 성소를 주신 목적이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예요. 언약 안에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소봉사가 주어지지 못합니다. 복음의 역사를 할 필요가 없어요. 복음의 역사를 우리 마음에 이루어주셔서 우리를 완전히 거듭난 사람으로 우리를 이 육을 영으로, 가라지를 알곡으로 그렇게 변화시켜주시는 목적은 하나님과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사람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복음의 역사를 해줄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이 육신을 따라서 사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겠냐고요 그래서 언약을 주시고 언약을 믿음으로 따라 살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복음의 역사 성소봉사를 해주심으로 우리를 완전히 변화된 사람 예수님이 형상을 가진 그런 마음으로 바꿔주시는 게 그게 바로 성소봉사예요. 그러니까 성소봉사를 주신 목적 이유가 언약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약을 올바로 알고 언약을 참으로 이루는 언약 안에 사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소봉사가 우리 마음에 이루어지려고 하면 믿음으로 살아야되요.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완전히 복종하여 순종하여 살려고 하면 그러면 예수님이 마음에 오셔서 복음의 역사, 성소봉사를 해서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믿음이 없이는 예수님의 은혜의 역사가 우리 마음에 임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믿음에 관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행사를 해야 되요. 믿음을 살아야 된다 그 말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믿음은 행사하지 않고 그냥 육신을 따라 살아버리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건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믿음은 반드시 행사를 해야만 그 믿음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한 우리 죄인들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확실하게 세워주고 믿음을 행사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를 세워주지 않고 언약을 체결해 봤자 언약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출애굽한 그 사람들과 언약을 체결해야 되요. 그러면 이 언약 안에서 우리 죄인을 구원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언약 안에 살려고 할 때 복음의 역사 성소봉사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가 있고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게 이루어 주실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반드시 언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 그냥 체결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언약을 맺기 전에 뭐부터 세워줘야 될까요? 믿음부터 세워주셔야 합니다. 그게 이 출애굽기 191-2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거예요.

출애굽기 19장부터 24장까지가 언약을 체결하는 내용입니다. 191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삼월 곧 그때에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여기 시내 광야에 있을 때에 시내 산에서 이들과 언약을 체결하시는데 출애굽, 애굽에서 떠날 때부터 제 3월 그때에 이들이 시내 광야로 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상당히 흘러갔어요. 출애굽한 건 정월 15일입니다. 정월 14일이 유월절이고 15일날 애굽을 떠나 나온 것이에요. 그러니까 215, 315일 그러면 두 달이 지나가는 겁니다.

이렇게 중요한 언약 체결하는 걸 왜 이렇게 거의 두 달씩이나 지난 후에 이들과 언약을 체결하자고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에요. 거의 두 달 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이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세우시는 일을 하세요. 굉장한 일들을 하십니다. 이들이 정말 하나님을 경험을 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마음이 있었다고 하면 그들의 믿음이 확실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러한 경험들 이들에게 거의 두 달 동안의 그런 경험을 여러 차례 주시고 또 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기간이 오래 지났다고 믿음 생기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을 평생 믿은 사람. 믿음이 있던가요. 아니요. 평생 믿었어도 항상 육신 따라 살아요.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그렇게 가르치죠. 칭의는 순간 사업이고 성화는 평생 사업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믿는 그 순간 의롭다고 하나님께서 여겨주시고 그리고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그 생애를 평생 살면 성화가 된다는 거죠.

그러면 그들의 가르침대로 하면 평생 살았으면 죽을 때는 성화가 되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죽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죽을 때가 돼도 전혀 성화 안 돼 있어요. 처음 믿을 때나 평생 믿은 후나 똑같아요. 전혀 거듭남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오랫동안 교회 다닌다고 믿음이 생기는 거 아니에요. 거듭남이 이루어지는 거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거의 두 달 그 기간 동안에 이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세워 주시고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체결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어요. 그러면 이들이 하나님께서 믿음을 세워주시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믿음이 확실하게 섰어야 합니다. 그랬는지 그 내용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들의 믿음을 세워주셨는지 그 과정을 보겠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난 처음에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시는 그런 역사를 하시죠.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능력이 많으시는 분이 한꺼번에 그냥 바로를 굴복시키지를 못하고 10번씩이나 바로 싸우냐 하는 거예요. 저는 그게 잘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냥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가지고 바로가 하나에 굴복하지 않고는 절대로 안 되는 그런 상황으로 얼마든지 만들어갈 수 있어요.

처음에 장자를 죽인다든지 뭐 얼마든지 애굽에 그냥 어마어마한 그런 재앙이 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내지 않고는 자기들이 망하겠다. 그러면 안 보내겠습니까. 다 보내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처음에, 처음에 주시는 그런 재앙, 사실은 재앙이 아니에요.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너를 세우신 것은 나 여호와가 어떤 신인지를 그것을 확실하게 온 세상에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말씀을 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을 알려주겠다고 말씀을 하는 거예요. 10가지 재앙이 아닙니다. 10가지 하나님 역사를 통해서 바로가 바로와 모든 애굽 사람. 애굽사람만이 아니라 애굽에 살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나타내셨다고 하는 거예요. 그 과정을 통해서 믿음 확실하게 세워졌어야 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았던 알지도 못했던 애굽 사람들 가운데서도 열가지 하나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저희 히브리 사람들이 출애굽을 할 때 그 사람들도 함께 나옵니다. 많은 잡족이 히브리 사람들을 따라서 나왔더라 그렇게 말씀을 해요. 그 잡족의 애국사람들이에요. 히브리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게 믿음을 세워서 10가지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그러니까 10가지 역사는 단순히 바로가 히브리 사람들을 내보내도록 하기 위해서 한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처음에 강하게 해서 그냥 처음부터 굴복해서 내보내게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열 번이나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굽히고 참 바로 하나님께서 볼 때는 죄인에 불과하죠. 수에 칠 가치가 없는 그런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바로와 다투세요. 바로 입장에서 서가지고 똑같이 그러면서 바로의 믿음을 세우려고 하는 거예요.

바로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면 어떤 역사가 일어났겠습니까. 바로도 구원받고 온 애굽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라서 믿는 그런 역사가 생겼을 것이고 그렇다고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 가난 땅으로 갈 필요도 없어요. 애굽에 하나님 나라 세우면 되는 거예요. 그랬다고하면 그때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져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자기 권세에 취해서 하나님을 끝까지 인정을 하지 않다가 홍해에 빠져 죽고 맙니다. 이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의 끝이에요. 그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유가 열가지 하나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그런 믿음이 없었다고 하면 그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우리는 여기 살기 원하니까. 이 애굽 바로가 우리를 핍박하는 그런 것만 좀 없애주십시오. 그들이 그게 원하는 것이었어요. 그 어려운 길을 가서 가난 땅에 가서그렇게 사는 걸. 그들이 원한 건 아니어서 하나님께 출애굽기 2장에 보면 그들이 바로가 너무나 학대하고 그래서 그들의 고난이 너무나 심해서 하나님께 울부짖었더라. 그런데 뭐라고 울부짖었을까요. 바로의 학대에서 구원해달라고 울부짖은 것이지.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보내달라고 울부짖은 게 아니라고요. 그게 항상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에요. 히브리 사람들만 아니에요.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에서만 구원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고난의 길을 가기는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는 이스라엘 사람들 구원할 방법이 없어요. 그들의 마음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단 말이에요. 거듭나야 구원이 이루어질 것아닙니까 그들이 세상에서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 출애굽 시킨 것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을 주기 위해서 그들을 출애굽 시킨 겁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하나님을 따라서 애굽에서 나오면서부터 고난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편하게 모든 것이 형통하고 잘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어요. 믿음이 안 세워진다는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새벽마다 하나님께 울부짖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축복을 하셔서 모든게 형통하고 잘되고 부자로 살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그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축복하는 것으로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죄를 이기던가요. 마음이 변화되어 있던가요. 아니요. 항상 죄를 따라 사는 이기적이에요. 변화가 돼 있지 않아요. 이 세상에서는 잘 살았을지 모르지만 예수님 재림할 때. 그들은 산과 바위에게 이르기를 우리 위에 떨어져서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려달라고 그렇게 애통하며 울부짖을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이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가고 있어요. 사람의 인도를 받아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산 게 아니에요. 사람이 인도했다고 하면 절대로 광야에서 40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40년을 사는데 40년 광야 생활이 편했을까요.

광야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광야에서 아무리 부족한 것이 없이 물도 충분히 주고 먹을 것도 충분히 주고 또 헤어지지 않고 발도 부르트지 않았을지라도 고생, 고생, 고생의 길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생이에요. 왜 그렇게 그들을 고생의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셨는가. 그렇게 그 길을 가면서 믿음을 행사하기 바랐기 때문이에요.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주셨는가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렇게 믿고 그 믿음을 행사해서 이 고난에서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고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이에요. 믿음을 행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행사하지 않고 왜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늘 가나안, 하늘을 준다고 하면서 이 땅에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나 그러니까 육의 마음은 원망이 나와요. 영으로 변화된 사람은 원망이 안 나옵니다.

영으로 변화된 사람은 참 내 자신이 육이라 내 자신이 죄 덩어리라 내 본성과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나를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잠깐 받는 이 고난은, 고난에 경한 것이 하늘에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려고 하는 거구나. 이것 없이 그렇게 영광의 중한 것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하는 거에요.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이 사도바울이에요. 그렇게 많은 혼란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끝까지 사도바울은 핍박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핍박하다 그쳤어요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이 끝까지 핍박을 하고 핍박을 받아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길이라고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기뻐했어요. 그러니까 환란 중에도 기뻐하라 그랬잖아요. 왜냐하면 환란이 너에게 인내를 이루고 인내가 너희에게 이 연단을 이루고 그 연단이 너에게 소망을 이루어주는 줄 알기 때문이다. 소망이 뭐에요 하늘 가는거잖아요.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편하게 사는게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에요 그냥 그렇게 살아서는 영광의 중한 것이 이루어지지를 못해요.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서 하늘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영생을 주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사는 이 생명 그거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고요. 이러한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항상 믿음을 행사하라고 하는 거예요 믿음을. 그래야 믿음의 연단이 이루어지고 믿음이 확실하게 세워지고 그런 사람이라야 하나님 언약 안에서 완전히 언약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데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성소봉사 복음의 역사를 하실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라야 예수님께서 완전히 다른 육을 영으로, 가라지를 알곡으로, 이리를 양으로, 가시나무를 포도나무로, 죄인을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수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라는 거에요. 이 은혜를 사모해서 이 은혜가 이루어지는 그 길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면서 환란 중에도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환란을 둬서 나에게 은혜로 참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는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 자신을 주님께 드리오니 더욱더 그런 은혜 가운데 완전하게 하나님 형상으로 변화되는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이루어주기 위하여 이렇게 2개월씩이나 뒤로 미루시면서 언약을 미루신 것이에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우리를 언약 가운데에서 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형질를 다 보시고 그리고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그런 길로 인도하셔서 고난 가운데도 항상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시고 그렇게 할 때 우리 믿음이 확실하게 세워지고 그 믿음을 따라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우리를 전혀 다른 하늘의 사람으로 거룩한 예수님의 형상으로 완전하게 변화시켜주시고 그러한 은혜를 우리에게 충만히 이루어 주십니다. 이러한 복음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날마다 충만하게 이루어져서 항상 믿음으로 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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